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고정적 신분을 가지지 못 한 채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졸업한 지 2개월도 안 되었다지만 사실상 20대 중반에 들어서면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주장하기에도 괜히 쑥스러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시험을 준비한답시고 2년 가량을 버렸고(*사실 난 '버렸다'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내가 그 시간을 날리기만 한 것은 아니므로.) 그 사이 많은 것들이 변했다.

 

시간을 잃어버렸다는 말이 와닿는 요즘이다.

시험을 준비하기 전, 그러니까 2.5년 전의 일들이 엊그제 일어난 것 같고

그 사이의 사건들은 형체 없는 미적지근 공기처럼 두루뭉술하게 느껴진다.

시즌마다 하이라이트가 되는 추억들이 있기 마련인데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의 사계절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틈틈이 '힐링'하기 위해 노력은 했지만.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가시적인 흔적이 없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2024년이 되어서야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2분기에 들어섰는데 너무 오래 멈춰 있던 탓에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조금씩 전진해 볼 뿐이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드라마 안나의 대사다.

내 SNS와 다이어리에는 '그래도 해냈다', '그래도 힘내자' 같은 말이 가득하다.

분명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텐데,

한심하기 짝이 없던 날들도 가득인데

돌이켜 봤을 때 노골적으로 부끄러운 기록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심리가 있다.

물론 '그래도 해냈다' 같은 말들이 순 거짓은 아니다.

부끄러운 하루를 보냈지만 마무리만큼은 잘하려고 애썼기 때문에,

긍정적 사고로 회귀하려는 기특한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기장에 적지 못한 나의 적나라한 진심은 뭘까?

 

가끔 궁금하다.

나 스스로도 도저히 모르겠는 본심이.

 

다이어리에 아주 솔직한 마음을 전부 써 내리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는데

나도 할 수 있을까?